촐라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킬로미터, 남체 바자르 북동북 14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 책을 읽기 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식검색을 해보았다. 촐라체는 독립된 하나의 산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세계 최고봉으로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 자락에 딸린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하나였다. 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 하나로만 그 거대한 산군을 뭉뚱그려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 아래에 이름을 가진 수많은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왔다. 산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과 높이와 난이도를 지닌 개별적인 존재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처음 제목만 접했을 때는 다소 낯설고 어리둥절했다. '촐라체'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은 순전히 '박범신'이라는 작가의 이름값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이 표지에 적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고,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은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작품을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 머쓱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시기에 산악 소설이나 도전 서사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저마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이, 촐라체라는 거대하고 냉혹한 산을 오르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극한의 추위와 산소 부족, 육체적 한계와 싸우며 힘겹게 정상에 도달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시련은 정상을 밟은 이후, 하산길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하산 도중 예기치 못한 조난을 당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몰리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처절한 사투 끝에 생환에 이르는 과정을 소설은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동안 뉴스 보도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산악인들의 조난 소식이나 그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간접적으로 접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극한의 경험을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토록 밀도 있게 마주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영상은 시각적인 충격을 주지만, 활자는 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내면을 파고든다. 등장인물들의 거친 숨소리와 얼어붙은 손끝의 감각,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집착이 문장 하나하나에 촘촘히 배어 있어서, 마치 내가 직접 그 얼음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읽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등반이라는 특수한 세계를 다루다 보니, 산악인들만이 알 법한 전문 용어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이해하는 데 다소 애를 먹기도 했다. 확보물이니, 자일이니, 빙벽 등반 기술에 관한 용어들이 낯설게 다가올 때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뜻을 짐작해봐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낯섦조차도 오히려 이 세계가 얼마나 전문적이고 치열한 세계인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소소한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책 전체를 관통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순간까지도 그 긴장감의 여운에서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독자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아,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먹먹한 여운 속에 머물게 만드는 힘이 이 소설에는 분명히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작가 박범신이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조난과 생환이라는 극적인 스토리 자체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촐라체'라는 산이 지니는 상징성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6,440미터. 어찌 보면 나약한 인간의 육체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득한 높이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그 불가능해 보이는 정상에 결국 발을 딛는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거대하고 막막한 어려움이 눈앞을 가로막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촐라체 역시 바로 그러한 존재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가 결국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 산악인들은 실제로 산을 오르는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그러한 인생의 진리를 몸으로 체득해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산을 오르지 않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각자의 삶 속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촐라체'를 마주하며, 그것을 오르고 또 넘어서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오르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하산길의 조난과 사투를 통해 진짜 위기를 겪게 된다는 서사 구조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즉 정상에 오르는 그 순간만을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오히려 무언가를 이룬 뒤에 찾아오는 허탈함이나 예기치 못한 시련이 더 큰 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촐라체의 등장인물들이 정상 정복이라는 목표를 이룬 뒤에도 하산길에서 더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던 것처럼, 인생의 진짜 시험대는 목표를 이룬 그 이후에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저마다의 촐라체를 마주하고 힘겨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등장인물들이 얼어붙은 손끝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끝내 살아 돌아왔듯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도 결국은 그 산을 넘어 무사히 하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박범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한 등반기를 넘어, 삶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을 오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담담하면서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