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마르크 샤갈이 직접 우화를 집필하기라도 한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펼쳐보니, 이야기의 본질적인 골격, 즉 우화 자체를 지은 이는 다름 아닌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장 드 라퐁텐이었다. 다만 그 라퐁텐의 우화 곳곳에 샤갈의 그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이 책만의 특별한 매력이었다. 덕분에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단순히 짧은 이야기 몇 편을 읽어 내려간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치 한 편의 근사한 예술 감상까지 함께 즐긴 듯한 풍성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책은 짧고 함축적인 우화들을 촘촘히 엮어 모아둔 형태로 전체적인 틀이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익숙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바로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짧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제목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읽어 나가다가 문득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새 그 이야기의 결말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정형화되고 뻔한 결말로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이야기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막을 내려버린 듯한 다소 허무한 감정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짧은 분량 속에서도, 라퐁텐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날카로운 풍자와 묵직한 교훈만큼은 결코 가볍게 흘려보내지지 않았다. 비록 이야기 하나하나의 길이는 짧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 세태에 대한 통찰과 은유는 결코 얕지 않았다.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오히려 짧기 때문에 더욱 응축된 깊이를 지닌 이야기들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어린 시절에는 이솝우화 같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권선징악이라는 결말을 그저 당연한 세상의 이치로 무심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착한 사람은 결국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그 단순한 도식을 의심 없이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인생의 중반이라 할 수 있는 30대에 접어들어 이 책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참으로 씁쓸한 감정이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 올라왔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고 정직하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몸소 겪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착한 사람이 반드시 보상받지 않고, 부지런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지도 않는 냉정한 현실을 이미 여러 번 마주해 본 어른의 시선으로 이 우화들을 다시 읽으니, 이야기 속의 소박한 정의로움이 오히려 아득하고 그리운 이상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애초부터 유년기나 청소년기의 독자들만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 쓰인 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미 인생의 쓴맛을 충분히 경험해본 어른들, 그리고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삶에 대한 희망과 순수한 믿음을 빼앗겨버린 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이들이 이 짧은 우화들을 통해 다시금 삶을 살아갈 작은 용기를 되찾고, 조금 더 올바르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다독여주기 위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을 위해 쓰인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지치고, 세상이 유난히 차갑고 무섭게만 느껴질수록, 오히려 이런 짧고 담백한 이야기책을 읽음으로써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서가 지닌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수사나 복잡한 서사가 아니어도, 짧은 우화 한 편이 지친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여기에 더해, 샤갈의 그림들이 이야기 곳곳에 함께 배치되어 있다는 점 역시 이 책만의 특별한 가치를 더해준다.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색채로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라퐁텐의 다소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글로만 전달되었다면 다소 씁쓸하게만 다가왔을 이야기들이, 샤갈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결 더 서정적이고 따뜻한 여운으로 마음에 남았다.
라퐁텐의 우화를 천천히 읽으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한 번쯤 조용히 돌아보고, 동시에 샤갈의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며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다. 짧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는, 글과 그림이 함께 빚어낸 위로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