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제도가 9월 11일부터 시작된다는 걸 얼마 전까지도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신 뒤로 막연하게 '언젠가는 준비해야지'라고 생각만 해왔는데, 사망 신고 다음 날부터 고인의 모든 금융 거래가 즉시 정지된다는 내용을 접하고 나서야 제 안일함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돌아가신 것도 아닌 부모님 계좌를 미리 정리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으면서도, 준비하지 않으면 진짜 낭패를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전준비 없이는 장례비도 못 꺼낸다
2025년 9월 11일부터 '사망자 금융거래 신속 차단 시스템'이 전면 가동됩니다. 행정안전부가 매일 사망자 정보를 한국신용정보원에 넘기고, 전국 4,890개 금융기관이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사망 신고가 접수되면 다음 날 바로 고인의 예금 인출, 대출, 신용카드 결제, 주식·ATM 거래가 전부 막힙니다(출처: 금융감독원).
기존에는 사망 신고 정보가 금융기관에 전달되기까지 최대 60일이 걸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유예 기간 동안 가족들이 장례비나 병원비를 처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 틈을 악용한 사례들이 문제가 됐습니다. 사망한 형의 스마트폰으로 비대면 대출을 받은 동생, 어머니 계좌에서 705만 원을 이체했다가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은 아들 사례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제도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장례비는 어떻게 하지?'였습니다. 정부는 예외 인출 제도를 운영한다고 하는데, 병원비나 장례비 영수증 같은 증빙 자료를 은행에 제출하면 유족 계좌가 아닌 병원·장례식장 계좌로 직접 송금해주는 방식입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상을 당한 직후에 서류 챙겨서 은행 승인 기다리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갑니다.
사전에 챙겨야 할 핵심 3가지
제가 이 제도를 파악하고 나서 실제로 검토한 사전 준비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비상 자금 계좌를 별도로 개설하고, 장례비·병원비에 쓸 금액을 자녀 명의 계좌로 미리 이전해두기
- 사망 직후에는 유족 개인 계좌로 인출을 시도하지 말고, 장례식장·병원 영수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해 직접 송금 요청하기
- 사후 처리 단계에서 상속인 전원 동의와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를 미리 준비해, 금융감독원 조회 서비스를 활용하며 대표 자녀가 일괄 처리하기
계좌봉쇄, 사망 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를 들여다보면서 저는 더 큰 맹점을 발견했습니다. 사망자 금융거래 신속 차단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사망 신고 이후에만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지만 치매나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거나 판단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요?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도입한 금융실명제 — 모든 금융 거래를 실명으로만 할 수 있도록 의무화한 제도 — 가 바로 이 상황에서 역설적인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금융실명제 덕분에 비자금이나 세금 탈루가 줄었지만, 예금주 본인이 의식 불능 상태가 되면 가족이라도 법적 대리권 없이는 한 푼도 인출할 수 없는 금융 사각지대가 생겨난 겁니다(출처: 기획재정부).
아버지께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신 뒤 제가 가장 먼저 겁이 났던 게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도, 자식이라도, 은행 창구에서 거절당할 수 있다는 현실. 이건 제도가 잘못됐다기보다는, 제도가 만들어진 목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문제입니다.
특히 현금을 많이 보유하신 부모님이 계신 경우, 자식들 입장에서는 생전에 자산을 관리해드려야 하는 상황이 불효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훨씬 더 큰 혼란이 옵니다.
후견제도로 미리 법적 안전망을 만드는 법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니까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그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미리 법적 장치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선택지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지정 대리인 청구 제도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은행에 자녀를 대리인으로 미리 등록해두는 방식으로, 이후 부모님이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등록된 자녀가 병원비 등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포괄적인 수단이 치매 안심 신탁입니다. 여기서 신탁이란 재산을 본인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은행)에 위탁해 관리하도록 맡기는 계약입니다. 치매가 발생하더라도 사전에 지정된 대리인이 병원비나 생활비를 지출할 수 있어, 재산이 묶이거나 외부에 유출될 위험을 줄여줍니다.
임의 후견 제도도 있습니다. 임의 후견이란 부모님이 판단 능력이 있는 동안 자녀를 후견인으로 지정하고, 재산 관리 방식을 계약으로 정해 공증인 앞에서 체결해두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나중에 판단력이 떨어지기 전에 '내 재산은 이렇게 관리해달라'고 법적으로 못 박아두는 겁니다. 만약 이런 사전 조치 없이 이미 의식 불명 상태가 됐다면 가정법원의 성년 후견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심사와 감정 과정에 최소 3~6개월과 상당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마지막으로 보험 지정 대리 청구인 제도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가입한 보험의 청구권을 자녀에게 미리 위임해두는 방식으로, 치매나 의식 불명 상태에서도 자녀가 보험금을 대리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부모님 보험 증권을 꺼내 확인해봤더니, 이 항목이 빠져 있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모님 사망 직후 장례비가 급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9월 11일 이후에는 사망 신고 다음 날부터 계좌가 봉쇄되므로, 유족 개인 계좌로 인출을 시도하면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예외 인출 제도를 통해 병원비·장례비 영수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하면, 유족 계좌가 아닌 병원·장례식장 계좌로 직접 송금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간단할 것 같지만, 서류 준비와 승인에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사전에 장례비 명목의 비상 자금을 자녀 명의로 미리 옮겨두는 것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Q. 치매에 걸린 부모님 계좌, 자식이 비밀번호 알아도 인출 못 하나요?
A. 맞습니다. 금융실명제 하에서는 예금주 본인 혹은 법적 대리권을 가진 사람만 출금이 가능합니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도, 법적 대리 권한 없이 인출하면 횡령이나 사기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지정 대리인 청구 제도나 임의 후견 제도를 미리 설정해두는 것이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입니다.
Q. 사망자 금융거래 신속 차단 시스템, 입금도 막히나요?
A. 입금은 막히지 않습니다. 채권 회수가 불가능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좌로 들어오는 입금은 허용되지만, 출금은 전면 차단됩니다. 다만 자동이체도 함께 중단되기 때문에 공과금, 관리비, 대출 이자 등이 미납되어 연체료나 신용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미리 확인해두어야 합니다.
Q. 상속인 여러 명일 때 고인 계좌는 누가 인출할 수 있나요?
A. 사망 신고 이후 고인의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하려면 상속인 전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 또는 위임장을 준비한 뒤, 대표 자녀가 은행을 방문해 처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금융감독원의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활용하면 고인의 금융 자산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 제도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정부가 고인의 돈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반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사망자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카드를 발급하는 금융 사기를 막고 상속세 탈루를 차단한다는 명분은 이해하면서도, 우리나라가 빈익빈 부익부 구조인 만큼 정작 이 제도로 불편을 겪는 건 평범한 가족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시행되는 이상, 준비하지 않으면 손해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경도인지장애가 나날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저는 이제 '불효 같다'는 감정보다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진짜 효도'라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습니다. 지정 대리인 등록이나 임의 후견 계약은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